파친코1에 이어 파친코2를 봤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2대와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일본 치하에서 우리 민족 생황이 가슴 아팠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우리 조상들이 어떤 생활을 했고 취급을 받았는지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독립 투사가 아닌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가족, 사랑 이야기를 접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파친코2에 와서야 이 소설의 제목이 왜 파친코인지를 알게 됐다.
일본 최고 와세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파친코장을 운영하게 되는 노아. 공부에 소질이 없었고 일찍이 파친코 일을 배우면서 성장하게 되는 모자수. 사회 생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선인이 일본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게 된다.
우리가 이론으로 아는 것과 직접 몸소 체험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인들의 차별에 대해서도 어른들이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알지 못한다. 내가 일본인들을 직접 상대하고 경험해봐야 조선인으로 태어나 불평등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자리에서도 조심하게 된다.조상들이 이렇게 눈치보면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는 게 정말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출생에 대한 비밀,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람이 돌변할 수 있다. 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 노아.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사라진다. 노아를 다시 찾았지만 그 결말은 충격적이다.
때로는 자신의 신념이 매우 강한 사람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릴 때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주변 환경을 중요치 않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이 맞음을 고집하고 그대로 이행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런 결정은 본인에게는 합리적이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괴로움과 슬픔을 줄 수 있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금융 회사에 취업했지만 상사에게 이용당한다.
회사에서 쫓겨난 모자수는 여자친구도 잃고 만다. 그들이 원하는 건 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정도까지 타협하며 사는 게 잘 하는 것일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에서 거주를 선택한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일본인처럼 보여야, 일본인이 되어야 더 잘살 수 있다.
조선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조선인이라는 걸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내 이득을 취하고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일본인이 돼야 한다. 이런 경우 일본인이 된 조선인을 탓할 수 있을까?
나라면 과연 일본에서 조선인임을 솔직하게 밝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잘살고 싶은 건 모든 사람의 욕망이다.
그 욕망을 넘어 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굳은 의지와 결의로 독립운동을 펼친 순국선열에게 머리를 숙인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 정의를 버려야 할 순간이, 나를 테스트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난 내 이득을 취하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싶지 않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 남들에게 베품으로써 얻는 기쁨을 잘 안다.
파친코2를 읽으면서 인간의 삶과 욕망, 행복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고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