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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
5.0
  • 조회 397
  • 작성일 2024-05-13
  • 작성자 오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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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선을 처음 만든 사람이 이순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순신은 예전부터 설계도로 전해 내려오는 거북선을 더욱 튼튼하게 발전시켰을 뿐 거북선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북선은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때에도 거북선은 왜군의 배와 싸워 크게 승리했기 때문에 여러 대신들이 거북선을 많이 만들어 왜군과의 전장에서 이기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자 거북선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 때 실제 책임자는 나대용이었습니다.
나대용은 어려서는 학문을 공부했지만 20세부터 무예를 닦으며 28세 때 무예에 급제했으나 벼슬은 계속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왜군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 때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 부임했다는 말을 들어 여수로 이순신을 찾아갔습니다. 나대용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창선'이라는 새 전투함을 만들었으며 그 뒤에는 '해추'라는 쾌속선 종류의 배도 만들었습니다. 나대용이 없었다면 거북선은 다시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지않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쓴 기록을 보면 철갑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순신이 몇 척의 거북선을 만들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다음과 같은 기록은 남아있습니다.
"전라 죄수사 이순신이 장사 100여 명을 뽑아 3척의 거북선에 태워 적진 속으로 드나들며 날 듯이 빨리 다니므로 적들이 감히 가까이 오지를 못했다"

이것을 보면 3척의 거북선이 있던 것은 확실하며 거북선에는 활 쏘는 군사와 노 젓는 군사를 합쳐 125명~130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북선에는 천자 총통, 지자 총통, 현자 총통, 황자 총통으로 대포를 쏘았습니다.


황자 총통
이 이름은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대보의 구경과 중량 등의 크기에 따라 천자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마도 거북선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에서 우리 수군이 크게 승리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592년 4월 13일 ( 48세 ) : 임진왜란이 일어남.
임진왜란의 시작
명량은 오늘날 진도대교가 있는 곳으로 물살이 매우 빨라 예로부터 빠른물살이 흘러가는 소리가 울음소리 같다고 하여 '우는 바다'라는 뜻의 '명량' 혹은 '울돌목'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순신은 1597년 9월 15일 전함 12척을 거느리고 울돌목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해남군 면대면인 전라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긴 후 장수들을 불러 모아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병법에 말하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지금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사람도 군령을 어기면 군법에 따라 작은 일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수많은 왜군의 배가 울돌목을 지나 이신순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전함이 바다로 나가자 왜군의 전함 333척이 에워싸기 시작했고 우리 군사들은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침착하게 군사들을 격려하며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이 홀로 적진에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마구 쏘아대니 처음에 겁을 먹었던 군사들도 시간이 지나자 이순신의 용감한 행동에 기운을 얻어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왜군 함대 사령관인 마다시가 죽어 물어 떠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순신은 마다시의 목을 베서 돛대 위에 달았으며 마다시의 목이 매달린 것을 보는 순간 왜군들의 사기는 크게 꺾였습니다.

이렇게 왜군들은 대장선을 비롯해 31척의 배가 한꺼번에 부서지자 두려움에 떨며 도망을 쳤고, 그중에서 100여 척은 도망가다 이순신이 울돌목에 미리 준비해 둔 수중 쇠사슬에 걸려 부서지고 뒤집어졌습니다.

우리 군사의 30배 가까운 전함을 이끌고 온 왜군은 무참히 패하고 돌아갔으며 칠천량에서 우리 수군이 전멸한 지 두 달만에 거진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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