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Sati)'. 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
우리의 삶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인생을 떠올릴 때 우리는 대부분 '행동하는 자아'로서의 인생을 떠올리는 것 같다.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어떤 일을 하며, 연애와 결혼을 하고, 운동과 자기계발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소소한 취미생활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행동으로 인생을 보내고, 또 계획하고 준비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자아가 있다는 것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바로 '존재하는 자아'이다. 호흡하고 있는 지금 현재의 존재 상태. 나.
마음은 하늘과도 같아서, 흐리다고 해서 하늘 자체가 영원히 흐린 것이 아니며 맑다고 해서 내일도 맑으라는 법이 없다. 물론 행동 자아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결국 사회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하지만 행동 자아만을 가꾸다가 그것이 비대해져, 존재 자아가 소외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변화무쌍함 앞에서, 결국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지?' 라는 공허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지우려고 또 다시 다른 행동을 찾아 나선다. (자기 계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도 자기 계발 좋아한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것은 목적지 없이 달리는 KTX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곽정은 작가의 오랜 팬이자 독자로서 이처럼 현실에 두 발을 꼿꼿히 딛고 있으면서도 계속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의 매력을 느꼈다.
명상을 불편한 느낌을 즉각적으로 없앨 수 있는 소화제나 진통제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명상은 무언가를 '없애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것이다.
그저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은 최면이지 명상이 아니다.
꽤나 매운 그의 '최면이 아닌 진정한 명상'에 대한 글은 바로 명상과 마음챙김을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 용도로만 여겼던 사람들에겐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슬픔을 느낀다면, 가만히 그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실수해서 너무 후회된다. 고통스러워.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내가 과거의 실수로 인해 지금 고통받고 있구나' 라고 가만히 바라본다. 감정은 정말 신기한 게, 이렇게 바라보면 그 힘이 반으로 줄어든다. 오히려 억압하고, 빨리 다음 감정으로 넘어가려고 애쓰면 그 힘이 더욱 거세진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시간에 질문해야 할 것은 93쪽에 잘 나와있다.
이 고통스러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내 인생의 이 불가항력적 사건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화해나가기 원하는가?
이 슬픔의 배를 타고, 나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이 너무 뜬구름잡는 이야기 같다면, 그건 곽정은 작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사랑과 연애 그리고 일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어디서도 듣지 못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며, 그것은 행복이기도 하지만 또한 고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그가 이 글을 적으니 나는 더욱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지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들어서 아는 지혜인 문혜, 사유해서 얻은 지혜인 사혜, 수행해서 얻은 지혜인 수혜가 있다.
심리학책을 아무리 읽어도 지식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태도 없이는 삶이 변할 수 없는 이유
우리가 갑자기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이 확 땡길때가 있지 않나? 잘 생각해보면, 그러한 갈망이 일기 전에는 그것을 자극하는 느낌이 있다. 외로움, 피곤함, 공허함 등. 그리고 그 느낌을 만든 감각이 있다. 그 감각에서 느낌으로 변하는 과정을 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책 한 권으로 마음은 해방되지 않고, 삶이 확장되진 않지만
얇은 종이들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처럼, 이 책을 읽는 행위가 얇은 종이 한 장씩 내 마음에 쌓여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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