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을 찾아서
이 글을 읽는 누군 가는 지금 쯤 의아해 하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저 사람은 비 정규 교육 과정에 대해 저렇게 길게 늘어놓고 있는 거지?
내가 처음으로 들은 자기 계발 세미나가 배움에 대한 내 열망에 다시 불을 지펴 주긴 했지만, 그것은 보통의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세니마를 들은 뒤 나는 세미나 광이 되어 온갖 세미나를 기웃 거리며 내 몸과 마음, 감정, 그리고 영혼을 하나로 연결할 방법을 찾으러 애썼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 왜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가?
- 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가?
- 학교는 아이들에게 현실적으로 사회에 대비할 수 있게 해 주는가?
- 왜 교사들은 대부분 가난한가?
- 왜 학교에서는 돈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내게 학교 제도라는 담장 너머 바깥 세상의 교육에 대해 공부하게 만들었다. 나는 연구를 통해 내가 왜 학창 시절에 학교를 싫어했으며, 어째서 학교가 대부분의 학생들을, 심지어 A학점 학생들마저도 제대로 교육하는 데 실패했는지 이해했다.
호기심은 내 영혼을 자극했고, 나는 교육 사업가가 되었다. 만약 이런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재정 관리를 교육하는 게임을 개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영적인 교육이 나를 삶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삶의 길은 우리의 정신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학교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나 자신은 정규 교육제도 안에서 내 길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삶이 길이 왜 중요한가?
여러분은 많은 돈을 벌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자기 일도 싫어하는 사람들도 알 것이다. 그리고 오직 돈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해양 사관 학교에 다녔던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해양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들어가 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되어 S사분면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오십대 초반에 죽었다. 친구는 변호사로 크게 성공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스물여섯살 때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는 변호사 일을 싫어했지만 가족과 아이들, 주택융자와 청구서를 위해 일을 계속했다.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많이 벌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늘 화가 나 있었고 영적으로는 죽어 있었으며, 그의 육신도 곧 영혼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이게 극단적인 예시라는 건 안다. 이 이야기는 좋아하지도 않는 직업에 매여 자기 길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어떤 문제를 겪는지를 잘 보여 준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바로 제도권 교육의 결점이다. 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싫어하는 일에 매여 살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뭔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다. 많은 이들이 재정적 함정에 빠져 겨우 먹고살 정도로만 벌며,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다른 경제 사분면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학교로 돌아가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거나 E나 S사분면에서 급여를 인상받는 데 그칠 뿐, B나 I사분면의 세계를 인지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