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의 입을 빌려 진행되는 이야기는 '모모'가 부모라는 존재에 별 미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모모'는 어떤 상황에도 새끼를 버리지 않는 암사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곧 그에게 상상으로 꿈으로 나타난다.
'로자' 아줌마는 이 현상을 두려워하며 '카츠'라는 정신과 의사에게 '모모'가 아프다고 진료를 받게 끔 한다.
'로자'는 '모모'가 암사자 꿈을 꾸는 것이 지독히도 무서운 듯 보였는데,
'로자'는 자꾸만 생과 가까워지는 '모모'와 거꾸로 생과 멀어지는 자신을 더욱 떨어트려 놓을지도 모르는 건
'모모'가 어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안락사도 당하지 못 하고 식물인간으로 연명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모모'가 자신을 떠나는 일이었다.
'모모'는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로자'아줌마가 뇌혈증을 앓게 되자 이번에는 '모모'가 아줌마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 '모모'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줌마의 천식 증상이 전염된 장면이야말로 '모모'의 두려움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로자'아줌마의 방에 있었던 처녀 적 사진을 보며 '모모'는 이질감을 느낀다.
사진 속 처녀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이제 '모모'는 생은 그러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다. 아줌마를 파괴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생'이었다.
'모모'는 금발의 '나딘' 아줌마를 만나게 되는데 영화 관련 일을 하는 '나딘'이기에 필름을 여러 번 되감아 녹음작업을 한다.
이를 두고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리는 '모모'가 얼마나 마음 아팠는 지 모른다.
이렇게나 버려진 '모모'와 '로자'에게는 이전에 말했 듯 좋은 사람이 함께 있다.
'롤라'아줌마는 젊은 시절 권투 선수로 일을 하다 정체성을 깨닫고 트렌스젠더가 된 후 창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소외된 사람들끼리의 우정은 하찮은 내 글솜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생은 어디에나 있다. 생을 두려워하고 대비할 줄 아는 이만이 사랑을 하고 생을 이어 나간다.
책이 끝나고 '로자'아줌마가 없어졌다 해서 '모모'가 가엾다면 언제나 버려지고 언제나 살아남는 일이 아직 낯설어서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까먹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슬픈 결말로도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을.